MS가 애플을 베꼈다? — 잡스와 게이츠, 세기의 라이벌이 걸어온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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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가 애플을 베꼈다? — 잡스와 게이츠, 세기의 라이벌이 걸어온 40년

· 18분 읽기

잡스와 게이츠, 세기의 라이벌이 걸어온 40년

- 빌 게이츠, 잡스에게

우리는 서로 상대방보다 먼저 부자 이웃의 집에 침입해 TV를 훔쳤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라이벌을 꼽으라면, 코카콜라 vs 펩시, 나이키 vs 아디다스가 있다. 하지만 기술 산업에서만큼은 단 하나의 대결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애플(Apple) vs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완벽주의 예술가 스티브 잡스, 그리고 냉철한 사업가 빌 게이츠.

이 둘의 관계는 우정으로 시작해, 배신으로 얼룩지고, 법정 싸움으로 폭발했다가, 극적인 화해로 마무리됐다. 그 과정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역사가 만들어졌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토대가 놓였다.

그런데 진짜 질문부터 하자. MS는 정말 애플을 베꼈을까?


프롤로그: 이 모든 것의 진짜 시작점은 애플도 MS도 아니었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제록스(Xerox)의 연구소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 에서 세상을 바꿀 발명이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우스. 아이콘. 창(window). 폴더. 클릭 한 번으로 조작하는 화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모든 것이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제록스는 자신들이 뭘 만들었는지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본업은 복사기였으니까.

1979년,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PARC를 방문했다. 잡스는 연구원들이 마우스로 화면을 조작하는 것을 보고 즉각 그 의미를 알아챘다. 그 자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애플은 제록스에 애플 주식 100만 달러어치를 대가로 지불하고, 이 기술을 정식으로 라이선스했다.

잡스는 나중에 이 방문을 이렇게 회고했다.

제록스는 금광 위에 앉아 있으면서 그게 금인 줄 몰랐다.

그리고 게이츠는 조금 다른 경로로 같은 광산을 발견했다. 제록스 PARC 출신 개발자 찰스 시모니(Charles Simonyi) 를 마이크로소프트로 영입하면서, GUI 기술의 핵심을 흡수했다.

즉, 원조는 제록스였다. 그리고 잡스와 게이츠, 둘 다 제록스의 아이디어를 가져갔다. 이것이 이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다.


1장: 협력의 시절 (1981~1984)

잡스가 먼저 게이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적이 아닌 파트너로 시작됐다.

1981년, 잡스는 신형 컴퓨터 맥킨토시(Macintosh)를 준비하면서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그가 찾아간 곳이 당시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잡스는 게이츠의 팀에게 맥킨토시의 내부를 보여줬고, 엑셀(Excel), 워드(Word) 등 Mac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했다.

한마디로 잡스가 먼저 게이츠를 집 안으로 초대한 셈이었다.

게이츠 팀은 맥킨토시의 모든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GU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코드 구조인지, 무엇이 핵심인지. MS 개발자들은 맥킨토시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Mac의 인터페이스 철학을 깊숙이 이해하게 됐다.

이것이 나중에 모든 문제의 씨앗이 됐다.

1984년: 맥킨토시 등장

1984년 1월 22일, 슈퍼볼 광고 한 편이 미국을 뒤흔들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애플의 그 유명한 '1984' 광고였다. 획일적 전체주의를 깨부수는 여전사가 등장하고,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1984년은 소설 《1984》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후, 맥킨토시가 출시됐다. 세계 최초로 대중이 살 수 있는 GUI 기반 퍼스널 컴퓨터.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하고, 폴더를 열고, 창을 끌어다 놓는 —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1984년에는 완전한 혁명이었다.

게이츠는 맥킨토시 출시 행사에 초대받았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했다.


2장: 배신의 시작 (1985)

게이츠가 잡스 뒤통수에 칼을 꽂다

1985년 11월. 잡스가 애플 이사회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회사에서 쫓겨난 바로 그 달,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 1.0을 출시했다.

마우스로 조작하는 화면. 아이콘. 창. 폴더.

맥킨토시와 너무나 비슷했다.

이미 회사를 떠난 잡스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배신감이었다. 자기 집에 초대했더니, 집 설계도를 통째로 베껴갔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상황은 간단하지 않았다. 애플의 새 CEO 존 스컬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MS 오피스를 계속 Mac에 공급해 주는 조건으로 — Mac의 "시각적 디스플레이" 기술을 MS에 라이선스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1985년 11월 21일의 일이었다.

스컬리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거래였다. 당시 Microsoft Excel은 Mac에서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였다. MS가 Mac용 소프트웨어를 계속 만들어주는 것이 애플 비즈니스에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그 계약서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다. MS에 부여한 라이선스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적용된다는 조항이었다. 스컬리의 법무팀이 이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게이츠는 이 허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3장: 세기의 법정 싸움 (1988~1993)

"당신 TV 훔쳐 갔잖아!" — "너도 같은 집에서 훔쳤잖아!"

1987년 Windows 2.0이 나왔을 때, 맥킨토시와의 유사성은 더욱 노골적이어졌다. 겹쳐지는 창, 아이콘들, 데스크톱 메타포 — 애플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1988년 3월 17일,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정식으로 고소했다. 청구 항목은 무려 189가지였다. Mac GUI에서 불법으로 도용한 시각적 요소들의 목록이었다.

잡스는 자신이 없는 동안 일어난 이 모든 사태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격언이 됐다.

"훌륭한 예술가는 창조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에 항상 뻔뻔했다."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잡스의 속마음이었다 — 자기는 제록스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적으로 진화시켰는데, 게이츠는 자기 것을 그냥 베꼈다는 거였다.

게이츠의 반격은 냉철하고 명쾌했다. 그 유명한 비유가 이때 나온다.

"스티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 둘 다 '제록스'라는 부자 이웃집이 있었어. 나는 그 집에 몰래 들어가서 TV를 훔치려 했는데, 알고 보니 네가 이미 훔쳐간 거였어."

법원의 판결: 애플의 참패

소송은 무려 4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결과는 애플의 완패에 가까웠다.

1989년, 판사는 189개 항목 중 179개가 1985년 계약으로 이미 라이선스된 것이라고 판결했다. 남은 10개마저 대부분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법리 원칙으로 기각됐다.

1992년, 항소심도 패했다. 1994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했다.

애플이 왜 졌을까?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스컬리가 서명한 1985년 계약이 너무 광범위한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둘째, GUI의 핵심 개념 자체는 제록스에서 나왔기 때문에 애플도 그 개념의 독점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셋째, 법원이 화면 인터페이스의 "느낌"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결국 역사의 아이러니가 완성됐다. 제록스에서 영감을 받아 Mac을 만든 잡스가, 자신에게 영감을 받아 Windows를 만든 게이츠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진 것이다.

그 사이 Windows는 세계를 정복했다.


4장: 빌 게이츠가 잡스를 1시간 기다린 날 (1986)

소송 이야기에서 잠깐 벗어나,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들여다보자.

1986년 가을, 게이츠는 잡스가 애플을 나와 차린 새 회사 NeXT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정식으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게이츠가 로비에서 기다렸다. 5분, 10분, 30분… 1시간.

NeXT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랜디 아담스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잡스가 자기 책상에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어요. 특별히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일어나서 게이츠를 맞으러 가지 않았어요. 1시간을 그냥 로비에서 기다리게 했죠. 그게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해줬어요.

의도적인 무시였다. 권력 게임이었다. 잡스는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느꼈고, 그 감정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뒷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이 1시간의 대기실 사건이 있고 11년 후, 게이츠는 파산 직전의 애플에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한다. 그리고 잡스는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해야 했다.

역사의 역전이었다.


5장: 그래서 Windows 3.1은 정말 Mac을 베꼈나?

이 글의 핵심 질문으로 돌아오자. DOS 이후 Windows, 특히 Windows 3.1은 Mac을 카피한 것인가?

정직한 대답은 이렇다: 영감을 받았고, 유사점이 있었다. 하지만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단순한 '복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유를 정리하면:

유사점이 분명히 있었다. 겹치는 창, 아이콘 기반 인터페이스, 마우스 조작 — 이 요소들은 Mac과 매우 비슷했고,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근거였다.

그러나 원조는 제록스였다. GUI의 핵심 개념 — 데스크탑 메타포, 마우스, 창 — 은 제록스 PARC에서 나왔고, 애플도 이를 라이선스해서 가져갔다. 애플이 Mac을 만들 때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맞지만, 개념 자체의 독점권은 없었다.

계약이 결정적이었다. 1985년 스컬리와 게이츠 사이의 계약이 너무 광범위하게 라이선스를 부여해버렸다. 법원도 이 계약을 근거로 애플의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MS도 독자적으로 진화시켰다. Windows 3.1은 단순한 복사본이 아니라 MS 나름의 구현이었다. Mac이 더 우아하고 세련됐다면, Windows는 더 개방적이고 광범위한 하드웨어에서 돌아갔다.

결론: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모든 혁신이 그렇듯 기존의 것 위에 새 것을 쌓는 과정이었다.


6장: 게이츠가 애플을 구한 날 (1997)

1997년의 애플은 시체나 다름없었다.

12년 전 쫓겨난 잡스가 돌아왔지만,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다. 현금이 90일치밖에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가는 바닥을 기었고, 언론은 "애플의 죽음"을 기정사실처럼 썼다.

잡스는 전화를 들었다. 받는 쪽은 게이츠였다.

"애플이 아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어요. 그래서 빌에게 전화해서 관계를 회복하려 했죠."

게이츠는 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동시에 두 회사는 모든 계류 중인 특허 소송을 취하하고, 크로스 라이선스 협정을 맺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계속 Mac에서 제공하기로 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Mac의 기본 브라우저가 됐다.

1997년 8월 6일, 맥월드(Macworld) 무대. 잡스가 발표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스크린에 빌 게이츠의 얼굴이 위성으로 연결됐다.

관중석은 야유와 탄식이 뒤섞였다. 적의 얼굴이 거대하게 떠오른 것이다. 바로 그 무대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애플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파트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빌, 고마워요.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됐습니다."

이 장면은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극적인 화해 장면으로 역사에 남았다.

잡스와 게이츠의 화해 장면

게이츠가 이 투자에 나선 이유가 순수한 우정만은 아니었다. 당시 MS는 독점 반독점법 위반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집중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경쟁사인 애플이 완전히 사라지면 MS의 독점이 더욱 명백해질 터였다. 애플을 살려두는 것이 MS에도 전략적으로 유리했다.

냉철한 계산과 오랜 파트너십이 뒤섞인, 복잡한 결정이었다.


7장: 화해, 그리고 마지막 인사 (2007~2011)

D5 컨퍼런스: 두 영웅의 마지막 합동 인터뷰

2007년, 두 사람은 올씽스D(All Things D) D5 컨퍼런스 무대에 나란히 앉았다. 기자 카라 스위셔와 월트 모스버그의 진행으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인터뷰한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였다.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의 감각(taste)을 갖기 위해 많은 것을 주고 싶다."

잡스는 게이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만든 회사는 인상적이에요. 함께 일했던 시간이 즐거웠고, 그는 똑똑하고 실제로 유머 감각도 있어요."

그리고 잡스는 자신과 게이츠의 관계를 비틀즈의 노래 가사로 마무리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는 비틀즈 노래나 밥 딜런 노래로 느낍니다. 하지만 딱 이 관계 하나는 비틀즈의 이 한 구절과 같아요. '당신과 나, 우리 앞에 놓인 길보다 더 긴 기억을 함께 가지고 있어요.' 이게 정말 진심이에요."

잡스의 죽음과 게이츠의 마지막 말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게이츠는 이렇게 추모했다.

"스티브와 일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밀어붙이며 경쟁했다. 그가 한 말들은 내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에필로그: 두 사람이 남긴 것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이 두 사람을 쉽게 선과 악으로 나누는 시선이 있다. 잡스는 예술가, 게이츠는 카피캣. 혹은 반대로 잡스는 오만한 독재자, 게이츠는 실용적인 사업가.

하지만 진실은 훨씬 복잡하다.

잡스는 제록스에서 영감을 받았고, 게이츠는 잡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잡스는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게이츠는 접근성을 추구했다. 잡스의 Mac은 소수에게 완벽한 경험을 줬고, 게이츠의 Windows는 다수에게 컴퓨터를 가능하게 했다.

둘 다 세상을 바꿨다. 방법이 달랐을 뿐.

그리고 결국,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의 자리를 번갈아가며 차지하고 있다. 마치 그 라이벌십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게이츠의 말이 맞았다. 둘 다 같은 부자 이웃집에 갔다. 한 명은 TV를 가져왔고, 다른 한 명은 리모컨을 가져왔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 모두가 그 TV와 리모컨을 갖게 됐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함께 웃고 있는 사진


연표로 보는 애플-MS 40년

연도 사건
1979 잡스, 제록스 PARC 방문 → GUI 영감
1981 잡스, MS에 Mac 소프트웨어 개발 의뢰 (협력 시작)
1984 맥킨토시 출시 — GUI 기반 최초 대중 PC
1985 잡스 애플 축출 / 스컬리-게이츠 라이선스 계약 체결 / Windows 1.0 출시
1987 Windows 2.0 출시 — Mac과의 유사성 심화
1988 애플, MS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 (189개 항목)
1989 1심 — 179개 항목 계약으로 커버된다는 판결
1992 Windows 3.1 출시 — 3개월 만에 300만 부 판매
1993 항소심 패소, 애플의 법적 싸움 사실상 종료
1994 대법원 상고 기각
1997 잡스 애플 복귀 / MS 1억 5천만 달러 투자 / 화해 협정
2007 D5 컨퍼런스 — 두 사람의 마지막 합동 인터뷰
2011 스티브 잡스 사망
현재 애플·MS, 세계 최고 시총 기업 자리를 번갈아 차지

이 글은 Walter Isaacson의 《스티브 잡스》, Steve Wozniak의 《iWoz》, 연방법원 판결문(Apple Computer Inc. v. Microsoft Corp., 1991), AppleInsider, Cult of Mac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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